적립식으로 몇 년째 매달 같은 금액을 넣어온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꾸준히 사 모으니 위험이 분산되고, 오래 할수록 더 안전해지겠지."
앞부분은 맞아요. 뒷부분이 틀립니다. 적립을 반복하면 위험이 줄긴 하는데, 그 효과는 생각보다 빨리 천장에 닿습니다. 게다가 위험이 줄어드는 동안, 다른 쪽에서 위험이 조용히 자랍니다.
이 글은 적립식 매수 두 번째 편입니다. 1편에서는 매달 같은 금액을 넣으면 평단이 조화평균이 되어 평균 주가보다 낮게 잡힌다는 걸 숫자로 봤습니다. 이번엔 그다음 질문을 따집니다. 그렇게 반복하면 위험은 도대체 어디까지 줄어드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줄어드는 폭에는 분명한 한계선이 있습니다.
적립식이 줄여주는 건 '어느' 위험일까
먼저 위험을 두 종류로 갈라야 합니다. 이 둘을 섞어 버리면 적립식을 실제보다 훨씬 든든하게 착각하게 됩니다.
- 진입 시점 위험: 하필 비싼 날 몰아서 샀을 위험입니다. 한 번에 다 사면 그날 가격 한 점에 운명이 걸리고, 여러 날로 나눠 사면 가격들이 평균으로 흩어집니다.
- 보유 자산의 시장 위험: 이미 사 모은 자산이 앞으로 출렁일 위험이에요. 내가 파는 시점의 가격이 어디 있을지에 대한 위험입니다.
적립식이 손대는 건 첫 번째뿐입니다. 매수를 여러 날로 쪼개니 진입 가격이 한 점에 쏠리지 않습니다. 두 번째, 이미 쌓인 돈이 폭락할 위험은 적립식이 건드리지 못해요. 평단을 아무리 잘 깎아놨어도, 내가 팔 때 가격이 그 아래라면 손실입니다.
한계는 여기서 출발합니다. 적립식이 줄여주는 진입 위험은 빠르게 작아지는데, 적립식이 못 건드리는 보유 위험은 계좌가 커질수록 오히려 부풀어요.
평균은 √n 만큼만 안정됩니다
진입 가격을 여러 번 나눠 사면 평균 진입가가 얼마나 안정되는지부터 따져봅니다. 매수 가격을 이라 하고, 각 가격이 평균 주위에서 표준편차 만큼 흔들린다고 두겠습니다. 이 가격들의 평균을 라 하면, 평균값의 흔들림은 이렇게 정해집니다.
기호가 낯설면 한 줄씩 풀어볼게요.
- (시그마)는 표준편차입니다. 값들이 평균에서 얼마나 멀리 흩어졌는지를 나타내는 숫자예요.
- 는 그 표준편차를 한 번 제곱한 값이고, 이걸 분산이라 부릅니다.
- 은 나눠 산 횟수입니다. 1년 매달 넣었으면 .
- 은 제곱하면 이 되는 수예요. , .
식이 하는 일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여러 번 나눠 살수록 평균 진입가의 흔들림이 분의 1로 줄어든다. 100번에 나눠 사면 진입가의 표준편차가 10분의 1로 가라앉는다는 뜻이에요.
다만 짚을 게 있습니다. 이 식은 가격들이 서로 무관하다고 가정했을 때 성립해요. 실제 주가는 어제와 오늘이 얽혀 추세를 타기 때문에, 평균의 안정 효과는 이 식보다도 작습니다. 그러니까 은 가장 후하게 잡아준 값이고, 현실에선 위험이 이만큼조차 안 줄어듭니다.
숫자를 넣어 봅니다. 한 번 살 때 진입가 표준편차가 1,000원이라고 가정하면(예시입니다), 횟수를 늘릴 때 평단의 표준편차는 이렇게 움직입니다.
| 적립 횟수 | 평단 표준편차 (=1,000원 가정) | 직전 칸 대비 추가로 준 폭 |
|---|---|---|
| 1회 | 1,000원 | — |
| 4회 | 500원 | −500원 (3회 더 넣어) |
| 9회 | 333원 | −167원 (5회 더 넣어) |
| 16회 | 250원 | −83원 (7회 더 넣어) |
| 25회 | 200원 | −50원 (9회 더 넣어) |
| 100회 | 100원 | −100원 (75회 더 넣어) |
처음 몇 번이 효과를 거의 다 가져갑니다. 1회에서 4회로 가면 표준편차가 절반으로 뚝 떨어져요. 그런데 25회에서 100회까지는, 75번이나 더 넣고도 겨우 100원밖에 못 줄입니다. 횟수를 쌓을수록 한 번 더 넣는 보람이 빠르게 쪼그라들죠.
여기서 핵심 한 줄이 나옵니다.
평단의 위험을 절반으로 줄이려면, 적립 횟수를 4배로 늘려야 합니다.
왜 2배가 아니라 4배일까요. 을 절반으로 만들려면 이 2배가 돼야 하고, 을 2배로 만들려면 이 4배가 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험을 또 절반으로 줄이려면 거기서 다시 4배. 줄일수록 비용이 폭증하는 구조예요.
아래 그림은 이 둘을 한 화면에 겹쳐 본 것입니다. 파란 선은 적립을 반복할수록 빠르게 평평해지는 진입 위험, 빨간 선은 그동안 점점 불어나는 보유 자산입니다.
파란 선은 4회만 넘어도 벌써 절반 아래로 가라앉아, 그 뒤로는 거의 바닥에 깔립니다. 반대로 빨간 선은 적립을 반복할수록 꾸준히 올라가요. 보라색 교차점을 지나면, 줄어드는 진입 위험보다 불어나는 보유 자산 쪽이 위험의 무게중심이 됩니다.
새로 넣는 돈의 힘이 사라집니다
진입 위험이 빨리 바닥나는 이유를 돈의 비중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매번 같은 금액 를 넣어 왔고 지금까지 번 넣었다면, 이번에 새로 넣는 가 전체 계좌에서 차지하는 몫은 이렇습니다.
읽는 법은 간단해요. 분자 는 이번에 넣는 돈, 분모는 그걸 더한 뒤의 전체 계좌입니다. 둘로 나누면 "이번 돈이 전체의 몇 퍼센트인가"가 나오죠. 기존 계좌가 대략 번치 쌓여 있다고 보면 이 값은 로 단순해집니다.
숫자를 넣어 봅니다(가격 변동은 잠시 무시한 단순 추정입니다).
- 1년 차, 12번째 적립:
- 5년 차, 60번째 적립:
- 10년 차, 120번째 적립:
10년쯤 넣은 사람의 이번 달 적립금은 계좌의 1%도 안 됩니다. 적립식의 "쌀 때 더 담아 평단을 낮추는" 그 메커니즘이 손댈 수 있는 건 딱 이 비중뿐이에요. 나머지 99%는 이미 시장에 그대로 노출돼 있고, 새 돈이 아무리 영리하게 들어가도 그 99%의 운명은 못 바꿉니다.
그사이 위험의 절대 크기는 반대로 커집니다. 시장이 한 번 출렁일 때 잃거나 버는 금액은 보유 평가액 × 변동폭이니까요. 같은 30% 하락이라도 계좌가 200만 원일 때는 60만 원 손실이지만, 1억 2,000만 원으로 불어난 뒤엔 3,600만 원 손실입니다. 적립식은 이 숫자를 단 한 번도 건드리지 못했어요.
여기서 직관이 두 번 미끄러집니다
💡 착각 1: "오래 적립할수록 계속 더 안전해진다."
진입 위험은 법칙대로 금세 평평해집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 동안 보유 자산은 계속 불어나고, 거기 실리는 시장 위험도 같이 커져요. 한쪽은 천장에 닿고 한쪽은 계속 오르니, 계좌 전체의 위험은 어느 순간부터 줄지 않습니다. 오히려 커질 수도 있어요.
💡 착각 2: "적립식이니 폭락장도 평단이 받쳐준다."
폭락이 와도 적립식이 영리하게 작동하는 대상은 그달 새로 넣는 돈뿐입니다. 10년 차라면 계좌의 1%도 안 되죠. 나머지 보유분은 폭락을 고스란히 다 맞습니다. 평단을 낮춰주는 것과 보유 자산을 지켜주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정리하면 적립식은 진입 위험을 깎는 도구지, 보유 위험을 막는 보험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입 위험을 깎는 능력마저 횟수가 쌓일수록 빠르게 닳습니다.
내 계좌에서 점검하는 법
자기가 적립식의 어느 구간에 있는지는 숫자 하나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신규 적립금 비중이에요.
- 증권사 앱에서 현재 평가금액을 확인합니다. 보유 종목 합계 또는 계좌 평가액으로 표시됩니다.
- 이번 달 적립액을 그 평가금액으로 나눕니다. 예를 들어 월 50만 원을 넣는데 평가액이 6,000만 원이면, .
- 이 비중이 한 자릿수 퍼센트로 내려갔다면, 적립식의 평단 조정 능력은 거의 소진된 구간입니다. 이제 위험의 중심은 보유 자산 쪽이에요.
점검 기준선은 이렇게 잡아두면 됩니다.
- 신규 적립금 비중이 5% 아래로 내려갔다 → 위험관리의 축을 '평단 낮추기'에서 '보유 자산 변동성 관리(자산배분·리밸런싱)'로 옮긴다
- 한 번에 잃을 수 있는 금액(평가액 × 예상 하락폭)을 직접 계산해 본 적이 있다
- 적립을 더 늘릴지 고민할 때, " 법칙상 효과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따져봤다
스프레드시트로 검산하려면 칸 두 개면 충분합니다. A칸에 월 적립액, B칸에 현재 평가액을 넣고 =A/(B+A). 이 값을 매년 한 번씩 기록해 두면, 적립식이 내 계좌에서 점점 힘을 잃어가는 곡선이 그대로 보입니다.
정리
적립을 반복하면 평단의 진입 위험이 줄긴 하지만, 그 효과는 법칙대로 금세 천장에 닿습니다. 위험을 절반으로 줄이려면 횟수를 4배 늘려야 하고, 그동안 정작 보유 자산의 시장 위험은 계좌와 함께 부풀어요.
지금 할 일은 하나입니다. 이번 달 적립액을 현재 평가액으로 나눠 신규 적립금 비중을 구해 보세요. 그 숫자가 작아졌다면, 더 열심히 적립하기보다 이미 쌓인 자산의 변동성을 어떻게 관리할지를 점검할 때입니다.
📚 참고 자료
- 표본평균의 표준오차 ()와 큰 수의 법칙 — 표준 통계 정의. 독립인 표본을 평균낼 때 평균값의 표준편차가 에 반비례한다는 결과입니다.
- 정액분할투자(Dollar-Cost Averaging)의 위험 분산 한계 — 적립식이 진입 시점 위험만 분산하고 보유 자산의 시장 위험은 줄이지 못한다는 점은 표준 재무 교과서에서 다룹니다.
- 산술-기하-조화 평균 부등식(AM-GM-HM) — 1편에서 다룬, 적립식 평단이 조화평균이 되는 근거.
- 본인의 평가금액·적립 내역은 거래 증권사 앱 또는 HTS의 계좌 평가·체결 내역에서 확인하세요.
이 글은 투자 교육을 위한 일반 정보이며, 특정 종목 추천이나 매매 권유, 시장 전망이 아닙니다. 모든 수식과 예시는 방법론 설명을 위한 것이고, 과거 데이터나 수학적 관계가 미래 수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습니다. 거래세·수수료·금리 등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수치는 본문의 예시가 아니라 증권사·국세청 등 공식 자료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댓글
아직 댓글이 없어요